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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아 칸은 자야바르만 7세가 참족에게 점령당한 앙코르를 찾기 위해 전쟁를 벌여 치열한 전투를 한 곳에 지은 사원으로 4개의 담이 둘러싸고 있다.

 

프레아 칸에는 5700여의 마을이 있었으며, 불교대학도 있었다고 한다. 자야바르만 3세가 신성한 검을 보관하였다고 하여서 이름을 프레아칸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흰두교과 불교의 특성이 다같이 남겨져 있으며, 당시에는 천명의 승려가 생활했다고 한다.

 

 

 

 

동문 입구. 한창 보수작업 중이다.

 

 

 

 

뱀의 형상이 우뚝 솟아있다.

 

 

 

 

 

한창 공사중이다. 3년후에는 완공된다고 한다.

 

 

 

 

입구를 통과하면 프레아 칸의 진명소가 나타난다.

 

 

 

 

미로같은 길이 곳곳이 나있다.  붕괴된 기둥들이 길 곳곳에 흩어져 있다.  

 

 

 

 

동상의 흔적

 

 

 


 사진 촬영 협조 잘해주는 이쁜아이들

 

 

 

 

 

 

무희의 방. 방 곳곳이 무희의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 이곳에서 무도회가 열렸을까?

 

 

 

 

벽에도 정교하게 무희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 사원을 건립한 자야바르만 7세는 불교신자여서 수많은 불상들이 있었지만 사후에 힌두교를 믿는 자야바르만 8세에 의해 수많은 불상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원주의 장경각. 이렇게라도 유지되어 있는게 다행이랄까

 

 

 

 

 

굴러다니는 조각에도 정교한 무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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